경북대학교 웹진 VOL.222 - (사)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사장 장익현 동문(법정대학 법학과 75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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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이사장 장익현 동문(법정대학 법학과 75학번)

뮤지컬은 뮤지컬 코메디 혹은 뮤지컬 플레이의 약칭으로, 19세기 영국에서 탄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말 《포기와 베스》가 막을 열면서 처음으로 뮤지컬이 등장했다고 할 수 있으며 1961년 예그린악단이 설립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이후 많은 창작 뮤지컬이 탄생한 것은 물론, 브로드웨이 유명 뮤지컬들이 수입 및 공연되면서 뮤지컬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공연 예술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시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뮤지컬 단일 장르로 국제공연축제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그 축제는 바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이하 DIMF)이다. 이번호 웹진에서는 DIMF와 대구 지역 문화의 발전에 힘쓰고 있는 장익현 동문을 만나보았다.

문화에 대한 사랑으로 DIMF와 인연을 맺다

 DIMF는 대구시가 뮤지컬 중심 도시 구축과 세계 최초의 뮤지컬 전문 축제를 표방하여 매년 여름,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개최하고 있는 국제행사이다. 2006년 Pre.축제를 시작으로 2007년에 제1회 DIMF가 개최되었고 2017년인 올해 11주년을 맞았다. 이번 DIMF는 지난 6월 23일 개막하여 18일간 진행된 끝에 7월 10일 DIMF어워즈를 끝으로 폐막했다. DIMF 프로그램에는 공식초청작, 창작지원작, 대학생뮤지컬 및 특별공연이 있으며 각 작품은 대구 주요 공연장 및 시내 전역에서 공연되었다. 국제뮤지컬페스티벌답게 공식 초청작으로 외국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특히 이번 해의 DIMF에서는 인도, 폴란드 등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국가의 뮤지컬 작품들이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올해에는 9개국이 참가하며 역대 DIMF 중 가장 많은 참가국 수를 기록했다.
 본래 장익현 동문의 본업은 변호사로, 예술과 크게 관련 없는 직업이다. 그가 DIMF의 이사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평소 공연을 자주 관람하던 것을 계기로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게 된 장 동문은 2009년에 이사직을 제안 받으며 처음 DIMF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후 2013년에는 대구시와 DIMF로부터 이사장직을 제안 받았고, 수락한 이후 지금까지 약 4년 6개월간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이사장으로서 주로 하는 일은 조직을 안정화, 전문화, 체계화시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직원들이 계속해서 꾸준히 일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DIMF 운영 노하우가 축적되어 갈수록 전문성을 갖출 수 있게 되었고 조직이 안정화되면서 운영 성과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장 동문은 재정을 강화하기 위해 후원금 마련에도 힘쓰고 있다. 덕분에 처음 임기를 시작했을 때보다는 DIMF의 재정 상황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는 이사장으로서 많은 일을 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며 모든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제가 취임한 이후에 ‘발전이 있었다.’, ‘성과가 있었다.’, 이런 말을 들으니 뿌듯하고, 항상 우리 사무국 직원들, 특히 집행위원장에게 저를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소외 계층을 살피는 다양한 사회 활동

 장익현 동문이 DIMF의 역할 중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바로 사회 공헌 활동이다. DIMF는 뮤지컬 ‘페스티벌’인 만큼 모든 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소외된 계층도 뮤지컬을 즐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스템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장 동문은 이렇게 설명했다. “소외된 계층에서도 뮤지컬에 관심이 있고,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비싸서 볼 기회가 없죠. 그런 분들을 위해서 DIMF가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마련된 시스템 중 하나가 대학생뮤지컬이다. 대학생뮤지컬은 대학생들이 기존의 뮤지컬 작품을 공연하는 DIMF의 프로그램으로, 모두 무료로 볼 수 있다. 기성 뮤지컬 작품을 똑같이 재연하므로 평소에 티켓 가격이 부담스러웠던 사람에게는 작품을 관람할 좋은 기회가 된다. 또 다른 시스템으로는 만 원의 행복이 있다. 만 원의 행복은 DIMF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작품 티켓을 동성로 부스에서 만 원에 판매하는 이벤트이다. 하루에 판매되는 티켓 수가 제한되어 있고, 2~3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매번 매진될 만큼 인기가 많다. 운 좋게 vip석을 구매하게 될 경우 본래 가격보다 대략 1/7 수준으로 티켓을 얻을 수도 있다. 이렇게 DIMF는 다양한 할인 혜택과 패키지 상품 판매로 뮤지컬 관람 문턱을 낮췄다. “그야말로 축제라는 말에 걸맞게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이런 시스템을 운영합니다.“
 장익현 동문은 개인적으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결혼이주여성 지원 사업이다. 장 동문이 국제로타리 3700지구 총재로 일할 당시 진행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결혼이주여성 친정보내기 프로그램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결혼이주여성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결혼이주여성 지원 변호사단을 조직하고 그들의 이혼소송을 돕기도 했다. 이 일화를 말하면서 장 동문은 본인의 능력으로 남을 도울 수 있어서 변호사라는 직업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결혼이주여성 지원 사업의 연장선으로, 장익현 동문은 현재 (사)글로벌투게더경산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글로벌투게더 경산은 이주여성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꽃집인 플라워 이음과 카페인 카페 이음을 운영하고 있다. 두 곳에서 플로리스트와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모두 결혼이주여성이다. 장 동문은 DIMF 이사장 임기가 끝나면 결혼이주여성 지원 사업에 좀 더 집중할 계획이라고 한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어린 한 마디

 장익현 동문은 본인 스스로 방황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사법고시에 합격하기까지, 그는 계속해서 방황하는 사람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며 느낀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세상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 공부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게 했다. 재학생 시절에는 예술분야에 집중했다. 연극을 보러 가기도 했고 수업이 없을 때는 음악다방에 가서 음악을 들었다. 졸업 후, 입대 전후로 짧게 직장생활을 하다 사표를 내고 나이 서른에 다시 고시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34세, 조금 늦었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어떻게 보면 지름길이 있음에도 굳이 멀리 돌아서 갔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장 동문은 그러한 ‘방황’을 겪었던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방황들이 제 삶에 있어서 큰 의미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사법고시에 합격하기 전에 다양한 경험들을 했기에 특이한 경력, 독특한 호기심을 가진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일반적인 변호사들의 행보와는 달리 본인만의 길을 개척한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다. 장 동문은 그러니 겁먹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인터뷰 내내 이어지는 대구와 DIMF에 대한 애정 어린 말을 통해서, 장익현 동문이 대구를 사랑하고 DIMF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할 만큼 맡은 일이 많아 개인적인 시간도 거의 내지 못한다는 장 동문.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즐겁게 일한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떤 활동을 할지 기대하며, 장익현 동문의 왕성한 호기심과 사회 활동을 응원한다.

  • 글 조민진
  • 사진 진승현
  • 편진 심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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