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웹진 VOL.238 - 도전하는 자가 꿈꾸는 모두의 극장

KNU동문

vol237

도전하는 자가 꿈꾸는 모두의 극장

공연을 보기 위해 수십 번의 서울행 기차를 탔지만, 이날은 유독 느낌이 남달랐다. “내가 어떻게 이 분의 삶을 몇 장의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8할이었다. 여기에 나의 주요 관심사인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동문님을 인터뷰한다는 설렘이 합쳐져 천국으로 가는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 들었다. 인터뷰 전, 나의 다짐은 단 한 가지였다. ‘질문지에 얽매이지 말 것!’ 나는 그와 인터뷰가 아닌 대화를 나누며 그가 개척한 ‘자신만의 공연장’에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갔다. 장르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는 공연장처럼 그의 삶은 새로움으로 가득했다.

정동극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의 복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전통 깊은 공공극장이다. 공공극장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예술가나 제작사에 저렴하게 공연장을 대관해줌으로써 좀 더 저렴하게 공연 표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게 돕는다. 궁극적으로 공연장을 체계적으로 운영하여 많은 국민이 다양한 공연 및 전시,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곳이다. 올해 8월, 정동극장 8대 대표이사로 신임된 김희철 동문은 작지만 강한 극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내년이면 정동극장이 25주년을 맞습니다. 저는 극장의 브랜드 가치를 최고로 만들고 싶다는 개인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독어독문학과. 그가 원해서 진학한 학과는 아니었다. 김 동문은 입학할 때 입시의 변화로 과가 아닌 계열별 접수를 해야 했고, 영어영문학과에 가기 위해 인문 계열을 지원했다. 원하는 대로 인문 계열로 경북대학교에 합격했지만, 영어영문학과의 높은 인기에 밀려 독어독문학과를 선택해야만 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전공을 공부해야 한다니.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욕도, 의지도 없이 3학년 1학기까지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하니, 제가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 이제 어떡하지. 이제 큰일 났다. 이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싶었습니다.” 불안함에 그는 무작정 중앙도서관으로 갔다. 그곳에서 잊지 못할 인연인 언론고시 모임 친구들을 만나 언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언론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그 친구들을 따라 “나도 한 번 해봐야지!” 싶어 도전했다. 도서관 문이 열리는 시간, 오전 6시부터 도서관이 문을 닫는 오후 11시까지 죽기 살기로 했다. 일 년 반의 사투 끝에 김 동문은 KBS 입사에 성공했다.

독어독문학과를 나왔다는 이유 때문인지,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KBS에서 88 서울 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 김 동문을 파견했다. 문화예술축전은 총 80여 개국, 3만여 명의 예술인들이 참가한 국제 행사였다. 50일간 진행된 이 행사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이탈리아, 러시아, 캐나다 등 동서양의 문화를 모두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일반 거리에도 무대를 설치해 ‘공연장과 같은 특정 장소에서만 공연을 해야 한다.’라는 인식의 틀을 깨기도 했다. 그는 여러 나라의 문화예술 공연 및 전시를 만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이런 세상이 있었나? 그전까지 공연이 뭔지, 이벤트가 뭔지, 전시가 뭔지 듣도 보도 못했거든요. 그곳에서 공연과 전시를 경험하게 되었죠. 결국, ‘나는 이런 세상으로 갈래’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후 그는 KBS에서 이와 관련된 사업에 꾸준히 참여했지만, 한계를 느꼈다. 공익적 사업을 주로 하는 방송국보다 더 자유로운 곳을 원했다. 그가 자유로운 곳에서 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삼성영상사업단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래! 나는 흥행과 산업적 사업을 하는 곳에서 해보리라’라는 생각을 안고 삼성 영상사업단으로 가게 됐죠.” 1년에 3, 4개월은 해외 출장을 가 세계의 멋진 공연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때 김 동문은 뮤지컬을 처음 접하게 됐고, 향후 우리나라 공연 사업에 주력이 될 분야는 뮤지컬임을 확신했다.
삼성영상사업단에서 5년을 보내고 나온 그에게 충무아트센터(구. 충무아트홀)가 공연장 운영을 해보지 않겠냐며 손길을 내밀었다. 공연의 다양한 분야 중에서 공연장 운영은 처음이었지만 김 동문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충무아트센터를 ‘뮤지컬 전용 극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의 행보 중 최고의 역작이라 꼽히는 작품,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누구나 제목을 들으면 알 수 있는 소재로 뮤지컬을 만들어 세계 진출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이 작품을 3년 동안 기획했다. “원작을 읽지 않아도 ‘프랑켄슈타인’ 하면 사람들이 소재에 대한 이미지,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그럼 내가 이 작품을 어떻게 소개할 필요가 없잖아요. 누구나 다 알고 있으니까. ‘지금 봐도 잘 만들었다. 멋있다.’ 이런 생각을 해요.”

김희철 동문은 충무아트센터 개관 구성원 중 하나로 다양한 시도를 하며 기획자로서 능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김 동문은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규모가 더 큰 기관에서 공연장을 운영해보고 싶어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2년간 세종문화회관 공연예술본부장직으로 자리를 옮겼었다. 그리고 2019년 8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 정동극장 대표이사로 임명됐다. 김 동문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지금의 김희철’을 이야기했다. “나는 이제 예술 행정을 하는 사람이에요. 일종의 공연장 운영을 하고 예술가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게끔 많은 행정을 하고 지원하는 사람이죠.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프로듀서도 해봤고, 투자자의 역할도 해봤고, 방송사 쪽에 있었으니 언론홍보도 해봤어요.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과정을 밟아온 거고, 이런 것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에게 문화예술은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분야라며 우리 학우들이 이 분야로 관심을 가져봤으면 좋겠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실래요? 문화예술 분야에서 함께 도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도전’이다. 문화예술이라는 분야 안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며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지, 꾸준한 노력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얼마나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학생리포터는 모두를 위한 극장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극장의 중심에서 소통하며 나아갈 김희철 동문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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