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학교 웹진 VOL.229 - 유리기로 본 실크로드 실크로드로 본 미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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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29

유리기로 본 실크로드 실크로드로 본 미래의 길

유리만큼이나 투명한 하늘이 펼쳐진 맑은 날씨였다. 뜨거운 날씨보다 더 뜨겁게 연구하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박천수 교수를 만나러 제4합동강의동 고고학 실습실을 찾았다. 고고학 실습실이 있는 4층에 들어서자 책이 든 캐비닛이 빼곡하게 복도를 채우고 있었다. 고고학 실습실 입구에는 이 공간의 또 다른 이름이 붙어있었다. ‘실크로드 조사연구센터’. 문이 열리자 복도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이곳에는 러시아어, 독일어, 영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책들이 차곡차곡 책장에 들어있었다. 책 속에 둘러싸인 우리는 커피의 은은한 향과 함께 박천수 교수의 고대 실크로드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문화의 기원이 중국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리기를 통한 실크로드의 변천’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통념을 깨뜨리는 데 있습니다. 신라문화는 중국 문화뿐만 아니라 신라 토착문화, 북방 기마민족 문화, 교역 국들의 영향 등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문화 형태였습니다. 이 사실을 밝혀준 연구가 유리기를 통한 실크로드의 변천이지요.
 신라가 존재하던 고대시대의 유리기는 굉장한 사치품이자 위세품이었습니다. 유리기가 귀했던 이유는 그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 아직 유리 만드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력으로 생산하지 못하니 수입에 의존했고, 먼 곳에서부터 들어올 뿐만 아니라 잘 깨진다는 특징 때문에 매우 희소한 물건이었어요. 일례로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유리 주전자가 있습니다. 이 주전자에는 자루가 깨진 후 금실로 감아 사용한 흔적이 있어요. 유리가 금보다 더 귀했다는 증거죠. 이런 유리기가 경주에서만 30점이나 발견되었어요. 당시의 중국, 일본에서 출토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입니다. 신라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죠.
 이런 유리기들은 실크로드를 통해서 신라로 들어왔습니다. 실크로드는 고대 중국과 서역 각국 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잇는 교통로로 시기마다 경로가 달랐습니다. 그 경로들을 보면 신라에 영향을 준 나라가 얼마나 많은 지 알 수 있지요. 3~5C에는 주로 초원로를 이용하였습니다. 시리아 부근에서 출발하여 흑해, 크림반도, 러시아 초원을 거쳐 몽골 초원, 중국 동북부, 그리고 신라로 연결되는 길입니다. 6~7C에는 오아시스 길이 실크로드였습니다. 이란에서 시작하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카슈카르의 오아시스 길을 건너 중국 장안을 지나 신라에 도착하는 길이지요. 이때 이란과 페르시아 문화가 중국 문화와 함께 신라로 들어오게 됩니다. 또한 흥미롭게도 실크로드는 육로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8~9C에는 해로를 타고 문화가 전파됩니다. 그 당시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인 이라크에서 출항하여 홍해를 타고 인도, 동남아시아, 남중국을 거치고 신라로 전해졌죠. 그 시기의 중국 동해안 지방에는 신라방 같은 신라인 거주지가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신라인들은 중국에서 직접 이슬람 문화와 접촉하려 했습니다. 타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매우 능동적인 민족이었지요.
 북방의 초원 문화, 페르시아 문화, 이슬람 문화 등이 신라 토착문화에 잘 섞여 우리 신라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실크로드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제는 이 연구가 외교적으로 잘 활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북방 협력관계는 물론 ASEAN과 인도가 있는 남방에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실크로드 연구는 단순히 고대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나라의 학자들과 경쟁할 수 있는 주제로 연구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전에는 한국과 일본에 국한된 연구를 했었는데, 좀 더 넓은 세계와 닿을 수 있기를 갈망했죠. 실크로드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소재였는데, 2009년 이란에서 우리나라와 관계 깊은 페르시아 사산조의 유물을 보고 공부한 뒤 본격적으로 실크로드에 대해 연구하기로 결심했어요.
 연구 주제로 실크로드 자체를 선정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해서 그 범위를 유리기로 좁혔습니다. 유리기를 선택한 이유는 한국 자료로 세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만큼 많은 유리기가 나온 사례는 없습니다. 서양에 비해서는 출토된 유리기가 많지 않지만 분명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서양의 유리기 연구는 미술사적이어서 우리 고고학에서 하는 것처럼 정밀하게 실측하고 관찰해서 연구한 자료는 별로 없어요. 이를 보고 서양과는 다른 방법으로 유리기를 연구하여 차별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호탄 박물관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왔다고 생각되는 로만 글라스를 보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작년이었습니다. 중국 시안에 있는 시베이 대학(西北大學)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죠. 실크로드 연구를 위해 시안에서 중국의 가장 서쪽 끝인 호탄까지 갔습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따라 혼자 11박 12일로 여행을 했죠. 여행 9일째쯤 호탄 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지친 상태였는데도 그 유물이 보이자 잔뜩 상기되어 사진을 마구 찍었어요.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동한 로만 글라스가 있다는 것은 듣기만 했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로만 글라스가 눈앞에 떡하니 보이고 있으니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실크로드 조사연구센터’가 세계적인 조사연구센터가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탄탄한 연구 센터를 통해 우리 대학에서 우수한 학자들을 육성하는 것이 제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지금 제 연구는 토대에 불과합니다. 그 위에 이 실크로드 연구소를 만들었고, 앞으로 더욱 활성화할 예정입니다. 계획 중 하나가 연구소 학생들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가서 실크로드 유적을 직접 발굴하는 것인데요. 출토한 것을 연구해서 그 성과를 세계 학계에 알리고 인정을 받아 우리 학생들이 세계적인 실크로드 연구자가 되도록 힘껏 돕는 것이 앞으로의 제 목표입니다. 또한 9월 8일부터 우리 대학 박물관에서 열리는 실크로드 특별전을 통해 실크로드에 대해서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험한 길이라고 해서 막힌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83학번으로 우리 대학 고고인류학과에 들어왔을 때, 모두들 우리 과에 희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고고학 자체가 생소한 학문이었고, 취직할 때 도움이 되는 전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고학을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아 석사과정을 밟으며 국비유학시험을 준비했고, 삼수 끝에 유학을 다녀와서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 과 졸업생 중에 교수가 된 사람이 10명 정도 있어요. 고고인류학과에 가면 어디 취직해서 사느냐고 많이들 얘기하는데, 길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제 사례가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네요. 또 넓은 세계에서 공부하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국내에만 눈을 두지 말고 바깥도 내다보시길 바랍니다. 또 다른 길이 보일 거예요. 그럼 우리 학생들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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