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U 동문

다가오는 6월,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The International University Sports Federation)이 주최하는 ‘세계 대학 미식축구 선수권대회’가 중국 하얼빈에서 개최된다. 2년에 한 번 열리는 이 대회는 전 세계 대학에서 오직 여섯 개 팀만이 출전할 수 있는 미식축구계의 저명한 대회다. 놀라운 점은 이번 하얼빈 대회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우리 대학 동문이자 미식축구부 ‘오렌지파이터스’에서 활약한 선수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번 호 인터뷰를 위해 학생리포터들은 한층 들뜬 마음으로 그가 훈련을 이끌고 있는 곳을 찾았다. 80여 명의 선수단 속에서 만난 신경창 동문을 소개해본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넘도록 미식축구와 함께해온 신경창 동문은 자타공인 우리나라 미식축구의 대가라 할 수 있다. 집에서는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가정을 지키고, 감독으로서는 선수들과 함께하며 팀을 이끌어 가고, 회사에서는 직장인으로 본분을 다하고 있는 그.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이지만 그는 매 순간을 쪼개어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과 주어진 역할에 모두 충실하며 살아왔다. 신 동문 인생의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미식축구와 인연을 맺은 지도 그렇게 1년이 가고, 10년이 가고, 20년이 가고, 어느새 만 30년이 지났다.
 학창 시절 그는 미식축구뿐만 아니라 학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 대학 토목공학과에 합격하였으나 당시의 집안 형편에 비쌌던 등록금의 부담을 피할 수 없어 좌절 할 번하기도 했다. 다행히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무사히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운동할 때는 운동에 집중하고, 공부할 때는 학생의 본분에 맞게 공부에 집중해 6학기의 장학금을 더 받으며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졸업 후 들어갈 수 있는 미식축구 사회인리그가 없었기에 졸업을 하게 되면 미식축구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업을 도중에 쉰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지만 미식축구 선수 생활을 위해 고민 끝에 1년 휴학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군대와 휴학을 포함해 총 8년간의 대학생활을 한 신 동문. 졸업 후에는 1995년부터 럭키개발, 지금의 GS건설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재직 중이며 각종 사회인리그에서도 활발히 활동, 현재는 미식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우리 대학은 전국 대학 간 경기에서 경성대학교(구. 부산산업대학교)팀을 이기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신경창 동문은 1992년 대학 재학 선수 시절 이 징크스를 깨고 반전을 이끌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에 대구 두류 운동장에서 대회가 있었던 25년 전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말했다. 그 때의 우승 덕분인지 이후로 우리 대학은 10년 간 우승을 이어 가기도 했다. 사회인리그의 선수로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식축구 대회인 ‘김치볼’에서 우승한 ‘레드스타즈’에서 활약한 바 있으며, 이후 감독으로서 또 한 번의 ‘김치볼’ 우승을 경험하였다. 재작년에는 사회인리그의 최고 대회인 ‘광개토볼’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여러 번의 우승을 거머쥔 미식축구의 대가인 신 동문이지만, 인터뷰에서 질문이 오가는 내내 단 한 번도 그런 결과들에 대해 으스대지 않았다. 그에게는 1등 수상을 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국가대표로 처음 선발되었던 때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당시에 첫 해외출국을 했던 그는 부산에서의 훈련기간을 포함한 이 기간 동안 인생에서의 많은 변화를 마주했다고 한다. 넓은 세상에 감탄했으며, 인생철학과 신념에도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때의 경험에서 착안해 지금 국가대표팀의 슬로건도 직접 만들었다. “Don’t Stay. Move forward.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앞을 향해 나아가자라는 말입니다. 그렇듯 어떤 험난함이 저를 괴롭힐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주어진 생활에 안주하고 싶지 않고, 늘 ‘~ing’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신 동문은 “지금까지도 제가 미식축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나가며 모교를 찾는 것은 다름 아닌 구성원들의 끈끈한 결속력 때문입니다.” 라며 미식축구만의 특별한 유대감을 자랑했다. 다른 운동들에 비해 본업과 함께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미식축구의 특징이다. 각양각색의 전공을 가진 구성원들이 미식축구를 통해 소통 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졸업 후에도 꾸준히 교류하며 깊은 우정을 키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엘리트 스포츠’가 되어 버린 우리나라 스포츠계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다른 일을 하려고 하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운동선수 대부분이 본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신경창 동문 역시 인터뷰가 진행된 금요일, 훈련을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왔다고 한다.
 지나온 세월만큼 쌓여간 미식축구의 경력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최소한 10년은 있어야 그 일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는 신 동문.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는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 녹화영상을 찍어두었다가 영상을 분석하여 상대팀에 따른 새로운 작전을 짠다고 말한다. 쉴 틈 없이 자신에 대한 분석, 상대팀에 대한 분석을 해야 좀 더 나은 전략이 나오기 때문이다. 격렬한 미식축구 훈련 특성상 휴식 없이 오랜 시간 연습을 할 수 없기에 훈련이 없는 날에는 SNS를 통해 선수들의 건강상태와 작전숙련도를 관리한다. 80여 명의 거대한 선수단을 이끌고 있는 그가 존경받는 감독임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신 동문은 실천과 꾸준함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는 미군 부대 출신 부하 직원과의 소통에서 답답함을 느껴 시작한 영어 공부를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 1시간씩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영어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는 후배들도 어떤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이 본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이것저것 따져보지 말고 당장 시작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인생의 기본이 되는 본인만의 명제를 가지고 살아가면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그. ‘열정(passion)’이 있다면 ‘자부심(pride)’이 생길 것이고, 그 뒤에 ‘명예(honor)’가 따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