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U 동문

롤모델을 인터뷰한다는 건 가슴 떨리는 일이다. 나는 작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 뉴스를 접하며 우리 대학 의대 출신인 장준혁 검사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후 그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며 장준혁 동문에 대한 소식을 계속 접했는데, 매 순간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임하는 모습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게 장 동문은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8개월 후, 나에게 롤모델을 직접 인터뷰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8월의 한여름이었지만 대구지방검찰청으로 인터뷰 하러 가는 길의 설렘은 무더위를 이겨냈다. 고 신해철 의료사고 사망사건, 영남제분 회장 부인 청부 살인 사건 등 많은 국민들이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는 사건들의 중심에 서 있는 장준혁 동문을 이번 호 웹진에서 만나보았다.
 
 
 
 장준혁 동문은 우리 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해 인턴까지 수료하고 안동 김재왕 내과에서 3년간 부원장으로 근무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만한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9년에 느닷없이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한다. 의학과 법의학 둘 다 만만한 길이 아님에도 주저 없이 새로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 동문은 학부생 시절 처음으로 법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본과 2학년 때 법의학 수업을 들으며 부검을 통해 단서를 찾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법의학에 매력을 느꼈다. 법의학에 열정을 가지고 강의하는 이상한, 채종민 교수님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었다. 의학도인 주인공이 검시관에 도전하는 줄거리의 만화, ‘여검시관 히카루’를 보며 법의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져갔다.
 장준혁 동문이 직접 겪은 사건도 그가 검사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장 동문이 인턴이던 시절, 근무하던 병원에서 의료분쟁이 발생했다. 환자가 초진 진료 시 인턴이 체크했던 증상과 본인이 직접 느낀 증상이 다르다고 고소를 한 사건이었다. 이는 주관적 증상과 객관적 증상이 달라 환자가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리는 데 굉장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장 동문은 치료를 잘 하는 훌륭한 의사만큼 증상과 결과 등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의사가 법의학자로 진로를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의사에 비해 업무 강도는 높고 보상은 낮았다. 가족들 역시 눈앞에 보이는 탄탄대로를 권유했다. 그래서 그는 법의학자 대신 검사라는 직업으로 눈을 한 번 돌렸다. 우리나라에서 부검을 할 수 있는 권한은 검사에게 있었고 인턴 때 겪은 의료분쟁은 의사 출신 검사의 필요성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로스쿨이란 제도로 법조계에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의사라는 직업보다 검사가 훨씬 제가 지향하는 바에 가까운 분야로 생각되었고요.”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병원에서의 3년까지, 정신없이 달려온 10년이라는 세월을 접어두고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2009년의 일이다. 그리고 꼭 3년, 장 동문은 검사가 되었다.
 
 
 경찰과 검찰은 명확한 목표가 있다. 사건의 원인을 찾아 책임자에게 명확한 처벌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소재라고 할 수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기 바쁘다. 의사들도 전공의, 교수로 나뉘어 책임을 회피한다. 의료사고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자백임과 동시에 바로 형사 처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차트’ 또한 병원에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증거 인멸의 우려도 크다.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대검찰청은 대구지검에 있던 장준혁 동문에게 수사팀으로 참여해달라고 연락했다. 수사팀에 참여한 장 동문은 퍼즐 맞추듯이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해나갔다. 신생아들의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원인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는 무엇인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부검결과, 역학조사결과, 의무기록, 진술증거 등을 가지고 법리검토를 하였다. 다수의 법학자, 의사, 소아과 교수, 법의관, 역학 연구자, 간호사, 의료법 전문가 등에게 교차 검증을 하고 의견을 수렴한 후 검증하였다. 이러한 수사 결과, 의료인들의 공동과실에 의해서 신생아들이 시트로박터 프룬디 균에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는 결론이 나왔다. 100명이 넘는 전문가들의 감정결과가 장 동문이 세운 가설과 일치했을 때의 느낀 전율은 엄청났다. 피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한을 풀어주고, 부모들 가슴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줬다는 마음 때문이다.
 장준혁 동문은 고 신해철 의료사고 사망 사건, 구미병원 22개월 유아 사망 사건 등 굵직굵직한 의료사고부터 알려 않은 의료사고까지 많은 사건을 수사했다. 이러한 사건들을 수사한 검사로서 장 동문은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사고 수사 환경은 과도기입니다. 의료사고 특성상 환자와 의사는 서로 가진 정보의 양과 질에 차이가 큽니다. 우리나라는 의료분쟁조정위, 사전위원회 제도를 신설해 여러 측면에서 의료사고의 진상을 규명하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반 형사 사건에 비해 난이도가 높고, 법학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시스템을 정형화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곧 법조계에 의학 전문가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현재 서부지검, 검찰수사대 등에서 정형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환경의 열악성을 인정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 차차 여건이 나아질 것이라 기대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조계 안의 의학 전문가’의 필요성에 있다. 장 동문은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준혁 동문은 올해 2월 우리 대학에서 국내 최초로 법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국 검사 2200여명 가운데 의사 출신 검사는 4명, 이 중 법의학 박사는 장 동문이 유일하다. 이미 국내에서 의사 출신 검사로 인정받았고 여러 업무로 인해 매우 바쁜데도 박사 과정에 도전한 이유를 들어보았다.
 장 동문은 처음에는 법의학이 좋아서, 그리고 검사로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 이는 그에게 큰 결실을 가져다주었다. 박사과정을 밟던 중 의료사고 공인전문검사 인증을 취득한 것이다. 이는 검찰청의 인증심사위원회를 통해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검사로 인증 받는 공인전문검사라는 제도로, 장준혁 동문이 학부생 시절부터 꿈꿔왔던 법의학의 끈을 놓지 않은 결과 전문성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장 동문은 3년간 숨 가쁜 나날을 보냈다. 검사로서 본인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 외에도 저녁과 주말마다 강의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장준혁 동문은 ‘의료사고 사건 수사의 개선 방향과 법의학자의 역할’ 논문으로 법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장준혁 동문의 학업에 대한 열정은 아직도 뜨겁다. 다가오는 9월 초, 그는 런던 LLM으로 유학을 간다. 7년차 베테랑검사인 장 동문은 영국 유학에 대해 말할 때 마치 새내기처럼 설렘이 가득해보였다. 영어를 다시 공부해야해 어렵기도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업무에 큰 도움이 되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며 한껏 들떠있었다. 영국은 형사 절차가 처음 탄생한 나라이자 법적 제도가 잘 구축되어있는 나라인데, 검사 국외훈련 과정이라는 좋은 기회가 그에게 닿아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 전공은 의료법이다. 그는 그곳에서 영국의 의료사고사건 처리제도에 대해서도 연구를 하게 된다.
 
 
 
 장준혁 동문은 후배들에게 ‘나만의 브랜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30살 이전은 선택의 폭이 가장 넓은 시기로, 이 시기에는 몸이 힘들더라도 인생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계속해서 이러한 방향을 고수하다보면 30살 이후의 내가 후회하지 않는 방향으로 하루하루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생 시기에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키워 타인이 나의 실력을 인정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나만의 브랜드를 갖기 위해서는 그 자체로 권위가 있는 형식적 요소인 학위, 자격증 등을 취득하는 것도 좋아요. 이것들을 취업을 준비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나의 가치를 높인다고 여기고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장준혁 동문, 그의 20대는 어땠을까. 장 동문은 20대의 하루하루를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결해나가자는 마인드로 임했다. 의학과에 입학하면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1년간의 국시 준비 기간은 고됐다. 하지만 그는 이 수험생활이 자격증이라는 결과도 주지만 20대 중 가장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감사히 생각하며 공부를 해 나갔다. 또한 대학생으로서 즐길 수 있는 경험인 대표단, 통기타 동아리 활동을 하며 본인의 브랜드 영역을 넓혔다. 바로 이 통기타 동아리에서 아내를 만나기도 했다. 많은 의대생 후배들의 롤모델인 장준혁 동문도 과거에는 지금의 우리처럼 하루를 열심히 살아나가는 대학생이었다.
 
‘의사 출신 검사, 국내 최초 법의학 박사, 국내 굵직한 의료사고 전담 수사’는 장준혁 동문을 수식하는 말이다. 이 수식어구는 장 동문의 무수한 땀이 서린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다. 장 동문이 대한민국 검사라는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로스쿨 후배들을 교육하여 의학 분야 검사의 길을 넓히는 것 또한 그의 목표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법의학 학문에 손을 놓지 않고 정진하고 있다. 공부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그의 눈은 빛났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하고 공부하는 장준혁 동문, 그에게 있어 꿈은 미래가 아닌 현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