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은 새로운 생명이 빛을 발하는 경이로운 찰나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외부의 도움을 받고 손쉽게 알 밖으로 나온 병아리는 자생력을 잃고 금세 죽기 마련이다. 건강한 병아리로 자라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으로 알을 깨야한다. 나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사람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미 닭이 병아리가 알 밖으로 나오는 것을 도와주지 않듯이 부모님의 품에서 손쉽게 성장하기보다 내 힘을 기르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부터 나에게 알을 깨는 힘을 주었던 스페인에서 교환학생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반복되는 아르바이트와 학교생활로 일상이 지루한 틀 안에 굳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곤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방학동안 장기간 여행을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또한 시간은 어찌나 쏜살같이 지나가는지 성큼성큼 다가오는 졸업, 아직까지 불투명한 진로 등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고뇌의 방점을 찍었던 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며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지고 도전의식 또한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와중에 평소 친분이 있던 선배로부터 독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경험담을 들었다. 그때부터 막연했던 일탈에 대한 열망을 ‘유럽’ 교환학생으로 구체화시켰다.
 내가 교환학생을 간다면 복수전공하고 있던 영어영문학과의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했다. 그런 점에서 가까운 중국대학부터 유럽대학과 미국·캐나다·호주를 비롯한 영어권 대학까지 다소 넓은 선택범위를 가졌다. 하지만 여러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했을 때 학점인정은 물론, 종강 이후 배낭여행을 다니기에 수월하다는 이점이 있으면서 생활비와 기타 체류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유럽권 대학으로 교환학생 갈 것을 마음먹었다. 그렇게 유럽권의 3개 대학에 지원했고, 스페인의 비고대학으로 최종파견을 확정 받았다. 드디어 알을 깨기 위한 5개월간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약 5개월간 비고에서 생활하면서, 한 학기를 비고 대학의 언어·번역학부(Facultad de traducción y la filología)에서 수학하였다. 그리 길지 않은 5개월이라는 시간은 내 생애 처음으로 완전히 낯선 환경에서 살아본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자취를 했던 것,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던 것, 그리고 간간히 여행을 다녔던 것은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제각기 의미 있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해외에서 혼자 공부한다는 것은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집을 구할 때 작성하는 복잡한 계약서 같은 의식주 관련 문제를 비롯해, 말이 통하지 않아 생기는 의사소통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난관에 부딪혔다. 그렇지만 교환학생을 온 본 목적인 ‘스스로 알을 깨고 나가기’, ‘틀 안에 굳어가는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불어넣기’를 달성하는데 낯설고 어려운 여건은 충분히 괜찮은 환경이었다.
 비고 대학에서 한국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달랐던 수업과 커리큘럼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이론수업 위주의 강의인 반면에 이곳에서 개설되는 모든 강의들은 이론과 연습(Practical)의 시간을 각각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론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유도한다는 취지를 갖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신유정 학생)

 
 
 나의 교환학생 생활 중에 전공수업이나 다른 학생과 교류만큼 중요한 것은 배낭여행이었다. 5개월도 그리 길진 않은 시간이지만 어쨌든 익숙해져있는 비고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자체가 나에겐 큰 도전이었고, 이 배낭여행을 통해 분명히 성장했음을 느꼈다.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2월부터 7월까지 총 5개월간 스페인을 포함하여 11개국을 방문하였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역사적인 명소, 혹은 광활한 대자연에 실제로 느껴보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간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행 중 언제나 몇 가지 난관에 맞닥뜨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곤경에 처할 때마다 누군가 나타나 도와주곤 했다. 기차역에서 환승게이트를 찾지 못할 때 누군가 선뜻 먼저 길을 알려주거나, 늦은 시간에 동양인 여자 혼자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며 택시를 잡아준 사람, 경비를 초과하여 노숙할 상황에 처했을 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돈을 빌려준 은인도 있었다. 교환학생을 오기 직전에 유럽은 몇 차례의 큰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의 여파가 채가시지 않은 곳에서 나 혼자서 돌아다닌다는 것에 지레 신경을 곤두세우곤 하였다. 하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주던 사람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있었다. 그들 덕분에 고마움을 배우고, 인종 간의 벽을 허물 수 있었으며, 소중한 인연을 쌓았다.
 
스페인은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혼자라는 외로움, 테러의 공포감, 이 모든 것을 해소시켜준 정말 고마운 나라이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스페인으로 출국할 때 생각했던 ‘진로’, ‘깨달음’ 등등 교환학생을 오게 된 다짐을 떠올렸다. 스페인에서 교환학생동안 무언가 뚜렷한 진로나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막연했던 무서움을 이겨냈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의 길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귀국하고 스페인에서 바로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꿈을 서서히 찾아서 향하고 있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알을 깨고나와 지저귀는 작은 병아리가 되었다.